컴퓨터나 인터넷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 이제는 현실화 되었다. 한때 사람들은 스크린 너머의 스타를 동경했고, 그 스타의 진짜 얼굴을 궁금해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정반대의 현실에 살고 있다. 그 어떤 ‘진짜’보다 더 매끄럽고 친절하며, 실수 없는 가짜가 노동 시장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디지털 페르소나, 즉 인간처럼 행동하고 말하며 일하는 가상의 존재들이다. 비추얼 유튜버, 버추얼 인플루언서, AI 가수, 가상 쇼호스트, 그리고 심지어는 AI 상담사나 모델까지. 그들은 피부도, 피곤함도, 여드름도, 실수도 없다. 항상 좋은 말을 하고, 감정을 계산하며, 24시간 일할 수 있다.
누군가가 만든 존재인 그들은 현실의 노동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며, 점점 더 많은 역할을 맡아가고 있다.
단순히 기술의 성과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문화적이고 정체성적인 문제를 품고 있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페르소나의 탄생 배경부터, 실제 노동시장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 노동자와의 경계를 어떻게 재정의하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이제 ‘일한다’는 말은 반드시 생물학적 인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조차 가상화되는 시대, 우리는 어떤 노동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1. 디지털 페르소나는 어떻게 노동자가 되었는가
디지털 페르소나란 기술적으로는 3D 그래픽, 애니메이션, 음성 합성, AI 스크립트 등을 통해 생성된 가상의 존재를 말한다. 그 기원은 게임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있지만, 현재는 이들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노동자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초기의 대표적 사례는 일본의 키즈나 아이다. 2016년 등장해 유튜버 활동을 시작한 키즈나 아이는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외모를 지녔지만, 실제로는 시청자와 소통하며 게임을 하고, 고민 상담을 해주는 버추얼 유튜버였다. 이후 한국, 중국, 미국 등지로 확산되며 디지털 페르소나는 단순히 오락의 영역을 넘어 브랜드와 계약하고, 광고에 출연하며, 온라인 공연을 개최하는 경제적 주체가 되었다.
최근에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만들어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LG전자의 버추얼 인플루언서 김래아, 삼성전자의 AI 모델 네온, 그리고 프라다,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와 협업한 미국의 가상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는 인간 모델 못지않은 영향력을 자랑한다. 이들이 노동자가 되는 구조는 단순한 자동화나 기술이 아니다. 정체성을 설계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출하며, 브랜드 세계관에 녹아드는 인격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노동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이제 가상의 나를 기획하고, 관리하고, 일하게 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자 산업이 되었다.
2. 비추얼 인간이 점령한 노동시장 그들은 어디에서 일하고 있을까
가상의 인간은 이제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실제 수익 창출 구조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광고와 브랜딩 영역은 가상 인플루언서는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의 신흥 강자다.
릴 미켈라는 프라다와 샤넬의 캠페인에 등장했고, 한국의 버추얼 모델 로지는 신한라이프와 한화손해보험 광고의 얼굴이 되었다.
광고주 입장에서 이들은 스캔들이 없고, 일정도 항상 조율 가능하며, 이미지 유지 비용이 적다. 무엇보다도 ‘컨트롤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방송과 스트리밍은 트위치,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버추얼 스트리머들은 수만 명의 팬을 거느리며 실제 수익을 올린다.
일본의 홀로라이브 소속 스트리머들은 굿즈, 슈퍼챗, 광고, 게임 콜라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연 매출 수백억 원 규모의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교육, 상담, 그리고 고객 서비스는 일부 기업은 가상의 AI 상담사나 쇼핑 도우미를 운영한다.
이들은 고객의 질문에 친절하게 응답하고, 상품을 추천하거나, 간단한 심리 상담도 수행한다.
기존 콜센터 인력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며, 정서적 응대를 자동화하려는 시도로도 확장되고 있다.
음악과 예술 영역은 AI 가수 아포지, 버추얼 아이돌 그룹, AI 아티스트 등이 등장하며 음악 시장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이들은 ‘기획된 감정’으로 노래하고 팬들과 소통한다. 인간은 그들을 설계하고, 응답을 조율하며 콘텐츠 제작자로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수행한다. 이처럼 가상의 인물이 활동하는 공간은 더 이상 한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이상적인 노동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3. 가짜와 진짜의 경계에서: 인간 노동은 어디로 가는가
디지털 페르소나의 등장은 기술의 진화만이 아니라 노동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이전까지 노동은 시간을 들여 에너지를 제공하고 보상을 받는 행위였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에서는 ‘존재 자체’가 일의 조건이 된다.
가상의 인물은 사람처럼 감정을 표현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브랜드를 대표하는 감정 노동자가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위치가 맞을 것인지는 많은 전문가들은 디지털 페르소나가 인간 노동을 전면적으로 대체하지는 않지만 일부 영역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특히 감정적 일, 브랜딩 일, 반복적 응대 등의 분야에서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
또한, 인간은 이제 디지털 존재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메타 노동이다.
가상의 연예인을 만들기 위해 작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성우, 심리학자 등이 협업하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 산업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체성의 위기도 발생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이 진짜 사람인지, 아니면 정교하게 디자인된 가짜인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감정, 관계, 표현마저도 시뮬레이션 가능한 자산으로 환원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는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디지털 페르소나는 분명히 기술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문화와 사회가 인간 노동에 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언제나 웃고, 실수하지 않고, 이미지가 완벽한 존재. 그것이 노동자의 새로운 모델이 된다면, 인간은 얼마나 더 노력해야 그 기준에 맞춰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점점 더 가상의 존재와 소통하고, 그들에게 정서적 연결감을 느끼며, 그들의 노동을 인정하고 있다. 가상 연예인과 AI 모델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이제 그들은 노동 시장의 플레이어로 자리잡았고, 인간은 그들과 공존하거나, 기획하거나,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일하는 방식,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 감정을 나누는 방식 모두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미래의 노동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사람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중심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디지털 페르소나가 있다.